이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 지는 모르겠다만, 난 내가 아무리 마르크스를 읽은 놈이라고 해도 "노동"에서 내 존재가치를 찾을 수가 없다. 쉽게 말해 난 일하기 싫어한다. 사장의 배를 배불려주는 일도 하기 싫고,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 따위 내가 알 게 뭐냐. 쉽게 말해 난 남을 위해 일하며 살면서 그걸 받아들일 만큼 이타적인 인간이 되지 못하다. (지못미 아담 스미스) 그렇다고 내가 개인의 영달을 목표로 살고 있느냐, 그건 또 아니다. 다만 나 자신의 고양과 발전을 위해서 살고 싶을 뿐이다. 그래, 난 남들에게 도움이 전혀 안 되는 사회의 기생충처럼 지원금을 빨아먹고 고문서나 사전이나 뒤적이며 평생 그따위로 사는 게 꿈이라면 꿈이다.
난 퇴근하면 대개 공부한다. 남들에게도 그냥 내 취미는 공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게 맞다. 그게 헬라어가 되었든, 히브리어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난 그걸 공부하는 게 좋고 별로 밥 걱정을 안 할 수 있게 화수분을 손에 넣으면 그냥 만원짜리 두배로 불려가면서 일용할 양식을 손에 넣고 그 짓만 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지금의 내게 취미일 수 있는 건 그게 지금 내가 처한 경제적 현실과 동떨어진 짓거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돈모아서 공부하러 갈거야, 라고 말하지만 그게 목표기 때문에 내가 공부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 잉여짓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는 말인지 사실 난 모르겠다.
정말 공부하러 갈 거라면 내가 정말로 해야 하는 공부는 사실 따로 있다. 일단 난 영어권 대학은 못간다. 기본적으로 난 학사전공을 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하다 보니 학부부터 들어가야 할 가능성이 높은데, 학부생은 사실 "봉" 아닌가. 유학생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캐나다로 가면 유학생은 아니게 되지만, 어쨌건.) 편입으로 학사학위 기간을 단축시킨다고 해도 솔직히 난 1년분의 학비도 스스로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학비가 안 드는 곳으로 간다고 하면 유럽이고, 찍어놓은 게 독일이다. 그러면 논리적인 결론으로 난 독일어 무지 열심히 해야 한다. 근데 그건 또 하기가 싫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관심사는 독일 자체가 아니니까. 하면 하게 되겠지만 내게 독일어는 "필요에 따라" 해야 하는 공부인 데 비해 내 책장을 채우고 있는, 원어민 전멸한 옛말들은 "필요없지만 그냥" 하는 공부니까, 당연히 후자가 더 재미있지 않겠는가.
외국어 공부에 있어서 사람들은 두 가지 동기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영어연애학개론동기유발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1. 그 집단에 동화하기 위해서 2. 그 언어를 수단으로 쓰기 위해서 두 가지가 나오는데, 한국의 대세는 내가 보기에 누가 뭐래도 2번이다. 1번을 위해 공부하는 인간은 거의, 거의, 거의 본 적이 없다. 2를 위해 공부하니까 공부하기 싫어도 하고 있고, 그걸 가르치는 인간들도 전부 2를 위해 공부했던 인간들이다 보니 2를 갖고 학생들을 설득하고, 1의 존재 자체가 잊혀져 있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니 1을 위해서 2의 가치가 없는 사어들을 굳이 무덤에서 파헤치고 있는 나같은 인간이 싸이코가 되는 거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인본주의자들은 피곤한 하루의 일상을 마치고 방문을 걸어잠그고 들어가 키케로나 베르길리우스를 꺼내들고 고대인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게 그들의 유일한 낙이었다고 끄적여 놨다는 걸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있다. 사실 지금 내가 그 꼴인데, 다만 그네들의 라틴어, 헬라어 실력이 나보다야 좋았겠지. 이건 뭐, 이도저도 못 하고 있지 않은가.
결론은... 공부하자. 괴롭지만 해야 하는 공부도, 해야 하는 거다. 영어는 싫은데 수학이 좋다는 학생들, 어느정도는 나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수학이 더 싫지만. -- Kaff Dec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