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의 배치순서는 마태-마가-누가-요한이지만 실제로 쓰여진 순서는 마가가 가장 최초이며, 마태와 누가가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고, 요한이 마지막에 쓰여졌다. 그런데 마가가 가장 최초에 쓰여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에수 사후 최소 2-30년이 지난 다음에 쓰여졌다는 게 정설이고, 신약성서 전체에서 가장 최초로 쓰여진 책은 사실 "데살로니카 전서"이다. 마가를 시작으로 복음서가 쓰여졌을 무렵에는 이미 바울과 베드로 및 사도들의 전도작업이 널리 진행중인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면 복음서가 쓰여지기 전에 개종한 기독교인들은 (아직 모태신앙보다 개종자가 많을 시기였을 것이다) 무슨 복음을 들은 것일까? (나중에 바울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언급하겠지만 바울은 거의 예수의 생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의 사역에서 예수에 대한 이야기나 일화들은 비중이 미미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일반적으로 나온는 설명은 그 이야기들이 "구전"으로 전해졌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구전"에는 한계가 있다.
성경이손에들어오기까지에서 언급한 대로 책을 놓고 베껴도 이본이 생기는데 들은 내용을 전하고, 다시 전하고, 다시 전하고를 반복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고린도(코린토스)의 한 여신도가 있다고 치자. 이 신도는 복음을 어디서 들었을까? 남편에게서. 남편은? 친구에게서. 그 친구는? 에베소(에페소스)에서 온 상인에게서. 그 상인은? 자기 친구에게서. 그 친구는? 안디옥(안티오키아)에서 온 상인에게서... 게다가 전도를 한다면 열성을 갖고 이야기하겠고, 그렇게 열성을 내어 예수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를 역설하다 보면 이야기가 변하고, 과장되고, 달라지고, 축소되고, 빠지고, 새로 생겨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던 과정에서 어쩌면 필연적으로 "이것이 예수다"라고 주장하는 오만가지 썰들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누가의 서문에도 밝혀지지 않는가: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 존귀하신 테오필로스 님,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저도 귀하께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는 귀하께서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누가 1:1-4) 여기서 드러나듯 1. 많은 사람들이 손을 댄 버전들이 존재했다. 2. 누가 본인도 목격자가 아니라 목격자에게서 들은 대로 적은 것이다 3. 헌정을 받은 테오필로스 역시 이미 여러가지 출처에서 잡다하게 이야기들을 들은 바 있다.
다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예수가 말하는 "복음"과 기록된 책으로서의 "복음"은 다른 개념이란 점이다. (예수가 죽기도 전에 자기 인생에 대한 책을 펴놓고 설법을 했겠는가) 예수가 말하는 복음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기쁜 소식이고, 책으로서의 복음서는 이 소식을 전하는 책인데 그 과정에서 예수의 생애가 같이 기록된 것이다. 따라서 원래는 지금 부르는 것 처럼 "마가의 복음서"같은 제목도 아니라 그냥 "예수의 복음서"같은 식으로 불렸을 것이다. 그러다 복음서도 여러 종류가 쓰여지자 "마가에 따른 복음서"(Kata Markan, Gospel according to Mark)라던가의 제목이 붙었을 것이다.
4편의 정경 가운데 최초로 쓰여진 복음서는 마가이다. 그리고 마태와 누가를 쓴 저자들(그게 실제로 누구든지간에, 편의상 마태와 누가라고 부르자)은 마가를 참조하고 재편집을 가했다. 예를들어 마가 5장과 마태 8장의 마귀와 돼지떼 일화를 보자:
마가: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5:1)
마태: 예수님께서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8:28)
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사실 이 한 사람에게 많은 수의 영들이 들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수가 많아서 자기를 "군단"이라 부른다, 등의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온며 이 이야기가 5장 1절에서 20절까지 계속된다. 그에 비하면 마태에선 어떤가? 이 잡다한 설명을 빼버리고 그냥 마귀 들린 사람을 둘로 만들어 버리면 되지 않겠는가. 이야기의 핵심은 예수가 "마귀들을 쫓아내 돼지떼에 쳐넣었고, 돼지떼가 강에 뛰어들어 죽어서,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니까 동사의 복수형을 써야 하는데, 아예 사람을 둘로 만들어 버리면 이 모든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된다. 그래서 마태의 기록은 8장 28절부터 34절까지로, 마가의 기록보다 훨씬 짧다. 같은 이야기를 다루는 누가의 기록은 마가에 비해 약간의 디테일이 생략되어 있기는 하나 마태처럼 크게 편집이 가해져 있지는 않다.
마가에서 전해지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 대부분이 마태와 누가에서도 이렇게 활용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차이점을 많이 보이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 마가의 기록들 중에 마태에는 등장하지만 누가에 안 나오기도 하고, 반대로 누가에 등장하지만 마태에 안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마태와 누가 모두가 먼저 쓰여진 마가를 참조하고 예수의 생애에 대한 기본적은 플롯을 취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요한은? 하고 물을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마태와 누가가 모두 마가의 기록에 의존하고(dependent) 있는 데 비해 요한은 별개의 장소에서 마가를 참조하지 않고 쓰여졌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요한의 내용은 다른 복음서들과 가장 적게 겹치는데, 그래서 바로 이 점이 "역사적 예수"에 대한 힌트가 되는 것이다. 마가, 마태, 누가에 동일하게 등장하는 일화가 있다면 이건 마가를 참조했을 테니까 실제로 1개의 증언으로 간주되는 데 비해 마가와 요한에 겹치는 일화가 있다면 이것은 독립된 2개의 증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마가와 요한이 겹치는 부분은 딱 이정도이다: 세례자 요한의 설교, 물 위를 걸음, 5천명을 먹임, 예루살렘 입성, 성전의 정화, 예수에 대한 음모,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자, 베드로의 부인, 체포, 심문, 십자가형 및 부활.
산상수훈은 어떨까? 마태에만 등장한다. 예루살렘에 있던 12세의 예수 이야기는? 누가에만 등장한다. 가나의 결혼은? 요한에만 등장한다. 그러나 마가에 기록된 거의 모든 기록은 다른 복음서 셋 중 하나 어딘가에는 최소한 등장한다. 즉 여기까지 최소한 2가지의 다른 "썰" 버전을 확인할 수 있다. 1. 마가 2. 요한.
마태와 누가가 그러면 마가를 베끼기만 했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오직 마태에만 등장하는 일화들도 존재하고, 오직 누가에만 존재하는 일화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예수의 출생인데,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동방박사가 찾아오는 게 마태고, 양치기들이 찾아오는 게 누가이며, 둘 다 찾아오는 건 동네 교회 크리스마스 연극이다. (사실 둘 다 찾아올 수 없다. 양치기들은 예수가 태어난 날 바로 마리아를 찾아오고, 동방박사들은 예수가 태어난 날 예수를 찾아 집을 떠나지 않는가) 이러한 부분들을 먹물 먹은 자들은 "마태 특수문서(M Source)", "누가 특수문서(L Source)" 따위로 부른다. 이제 복음서 저자들이 참조했을 썰이 4개가 생겼다. 1. 마가, 2. 요한, 3. M, 4. L.
그러면 마태와 누가는 각각 마가+M, 마가+L로 구성되어 있어야 할 텐데, 여기서 약간의 문제가 있다. 마가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데 마태와 누가에서 동일하게 등장하는 구절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마태 11:7-11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누가 7:24- 28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돌아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이것저것 잡다하게 인용하기보다는 크게 한 덩어리를 옮기는 게 나아보여서 좀 길지만 이 부분을 인용해본다. 웬만하면 그리스어 쓰면서 잘난척하고 싶지도 않으니 번역본만 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딱 그만큼 그리스어가 다르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냥 전해 들은 것 치고는 꽤 긴 말이 거의 그대로 똑같이 적혀 있으니 이것도 (마가같은) 같은 출처에서 비롯된 거라고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나온 게 Q 가설이다.
Q는 존재했었고, 마태와 누가의 저자들이 참고에 사용했을 것이나, 지금까지 전해지지는 않는 가설상의 문서이다. Q는 남아있지도 않고, 동시대의 누구도 이런 비슷한 문서에 대해 언급한 적도 없기 때문에 가설로서 의문의 여지는 남아 있다만 지금은 거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즉 마태와 누가는 2권의 책, 마가와 Q를 놓고 참조하면서 자기들의 내용(M, L)을 각각 추가하여 지금의 복음서를 완성하였을 거라고 추측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Q는 대체 어떤 문서였을까. 마태와 누가가 공유하면서 마가에 없는 부분들을 추려내면 특이하게도 대부분이 예수의 "말"들이다. 즉 Q는 일종의 어록이었을 것이고, 일대기적 기록이 아마 없었을 것이다. 예수의 말은 있는데 이게 어디서 무슨 맥락에서 한 말인지 알 수 없다 보니 마태와 누가는 같은 말을 다른 맥락에서 예수가 한 것으로 배치하고 있다. (마태에서는 예수가 5번에 걸쳐 긴 설교를 하는 데 비해, 누가에서는 예수가 여행중 여기저기서 같은 말들을 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즉 마태와 누가는 마가의 기본 스토리라인에 Q에 기록된 예수의 단편적 어록들을 자기들 보기에 적절한 곳에 나누어 배치해 복음서를 완성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면 예수에 대한 "독립적 증언"이 5개로 늘어난다: 마가, 요한, M, L, Q. 이를 간단히 도식화하면 이런 모습이 된다:

(그림에 M과 L은 빠져 있지만 Matthew와 Luke에 포함된 것으로 보면 된다. 요한은 이 과정과 독립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그림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랫동안 Q와 같은 "예수 어록"이 고대에 존재했다는 근거가 없었다. Q가 존재했다면 아마 마찬가지로 공자 어록인 "논어"와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예수왈, 어쩌고 저쩌고. 다음 절에 예수왈, 어쩌고 저쩌고. 문제는 그러한 형식으로 쓰여진 복음서가 가상의 Q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는데, 그러다 20세기 중반에 이와 같은 "어록"형식으로 쓰여진 문서가 하나 등장하니 그게 "도마복음"이다.
도마복음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으나 그동안 파피루스 쪼가리에 단편적으로만 남아 있었고, 완전한 버전이 발견된 건 20세기 이집트의 Nag Hammadi에서 발견된 콥트어(이집트어)로 번역된 사본으로서이다. 도마복음의 발견은 여러 모로 충격적이었는데, 위에서 말했듯 어록 형식으로 쓰여진 유일한 복음서이며, 도마는 비록 Q가 아니지만 Q와 같은 형식이라는 점에서 도마의 발견이 Q가설에 대한 강력한 근거로 제기되기도 했다.
도마에 기록된 말씀들 가운데 많은 수가 Q와 겹치고, 또 많은 수는 요한과도 겹치는데, 그렇다면 도마도 예수에 대한 독립적인 증언으로 볼 수 있을까? 도마를 빼고도 신약성서의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외경"들은 많이 있지만 대개 2세기 이후에 쓰여진 것들이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예수의 생애와 너무 떨어져 있어 독립적인 증언이라고 보기 어렵다. 문제는 도마의 연대인데, 학자에 따라서 기원후 60년경에서 140년정도까지를 대개 잡는다. 도마가 1세기 후반에 쓰여졌다면 도마는 독립적인 증언이 되지만 2세기로 넘어간다면 이미 쓰여진 복음서에 바탕을 두고 쓰여졌다는 뜻이 되므로 독립적인 증언이 아니게 된다.
정리해 보자면, 지금 존재하는 복음서가 이루어지기까지 존재한 예수의 생에 대한 다른 버전들은 5-6개정도가 확인이 가능하고, 그들 중 Q를 제외한 다른 문서들은 각각 특정한 저자의 이름을 달고 있다. 이들 중 누가가 바울의 서간에 언급되는 누가와 같은 인물이라고 한다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바울 제자들 사이에서 생산되었을 것이며, 요한이나 도마는 두 사도의 제자들 사이에서 생산되었을 것이다. 마가가 누군지 정확히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2세기 파피아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베드로의 친구 혹은 제자였을 것이며, 마태는 그나마의 기록도 없으나 예수에게 부름받은 세리 마태였으리라고 짐작되어 왔다. 그것도 그럴 듯 한 게, 마태가 대대적으로 전도에 나섰거나 교회에서 리더쉽을 발휘했다는 기록이 마땅히 없는 걸 보면 그는 유대를 벗어나지 않고 몇몇 신자들을 이끌며 조용히 살았던 게 아닐까 싶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베드로와 부딪힌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 고린도서에서는 신자들이 자기는 누구 파, 자기는 누구 파 하고 갈라지는 모습도 등장한다. 초기교회가 하나의 집단으로 형성되기 전에 이리저리 떠돌던 예수에 대한 이야기들은 몇몇 사도와 그들을 따르는 신자들의 집단 사이에서 기록되고, 이 집단들은 각각 자기들 나름의 버전을 만들어 이게 진짜 예수의 생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서로를 참조하는, 경쟁적 협력관계에 있었던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쓰다보니 글이 정말 난잡하다.

신약성서는 서로 얽혀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중간에 잠깐만 어쩌면 글이 옆으로 빠져나가버린다. 이것도
마가와수난받는메시아에서 잠깐 언급하려던 게 새나가다 보니 길어져서 분리했는데 이렇게 길어져버렸다. 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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