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살다 보면 취직은 정말 중요한 이슈이다. 가방끈이 너무 길어진 대학원생이 이제 와 새삼 기업에 들어가기도 힘들거니와, 인문학 전공이라면 취업의 문턱이 너무 좁다. 박사학위 취득 후 대학의 강사직, 대학의 연구교수직, 연구소의 연구원직이 아니라면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전공 선택에 대해 고민하는 자들이 모였을 때 (이해가 안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대학원에는 석사과정에 입학할 때 세부전공을 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자주 나오는 발언이 이런 거이다. "야, XX는 취직 안돼" 라는 말. 그런 전공을 한 연구자에게 테뉴어를 주는 대학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나도 예전엔 몰랐는데, 이 동네의 취직은 테뉴어 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외에는 전부 부업으로 뛰는 아르바이트인 모양이다. 본업은 논문 쓰는 일인가.)
그래서 무엇무엇에 흥미가 있더라도 선뜻 그것을 연구하겠다, 라고 말하기가 어렵고, 어렵게 용기를 내어 선배나 교수에게 상담한다 하더라도, 돌아오는 답변은 십중팔구 "정 하겠다면 어떻게 하겠냐마는 취직 절대 안된다. 잘 생각해라." 좀 친하면 이런 말도 덧붙는다. "집에 돈 많으면 하든가."
현대의 인문학은 18, 19세기 귀족들의 잉여질, 혹은 귀족들의 잉여로운 후원을 받는 자가 하는 잉여질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먹고 살 걱정을 한다. 그러니까 뭐라고 할 일은 아니다.
다만, 저 소리가 나에게 향해지는 것에 울컥할 때가 있다. 취직 걱정을 할 것 같으면 내가 20대 다 끝내고 다시 연구자 한다고 대학 들어왔겠냐, 그것도 이런 취직 안되는 분야의 취직 안되는 세부전공을 골라가며 파겠냐, 라고 팩 쏘아붙이고 싶을 때가 아주 많은 것이다. 지금 이 삶을 선택하면서 내가 포기한 것들이 컸기 때문에, 과민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cognitive dissonance를 해소할 방법이 달리 없기 때문에 돈 못벌고 끼니 걱정하는 생활이 될지언정 연구자로 사는 게 더 마음에 들기 때문에 선택했다, 라는 식으로 무의식중에 이 삶의 선호도를 끌어올리고 있는 거겠지. 내가 버린 것은 가치가 없었다, 내가 택한 것은 가치가 크다, 라는 식의 가치 재조정. 이게 수시로 내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과민반응 금물, 이라고 되뇌이며 아 예, 저도 알긴 아는데요, 하고 넘어가려고 노력은 하는데, 수양이 덜 되서 그 자리에서 참고 넘겨도 혼자 돌아와서 끙끙거릴 때가 많다. 그럴 때 머릿속에서 치받아올라오는 각종 험한 생각들은 적지 않겠다.
"XX는 취직 안돼"라는 말은, 언제 누구에게 던지든 좋은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걸 하고 싶다는 사람이 그게 뭐하는 연구/주제인지,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르고 말을 하고 있다면, 그 부분을 지적해주면 된다. 잘 알면서도 말을 하고 있다면, 현실적으로 많이 힘들텐데 괜찮겠어? 라고 물어보면 된다. 예상되는 어려움에 대해 어떤 대책이 있는지, 그런 것들을 화제로 삼는 게 차라리 건설적이다. 혹은 왜 그런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그걸 하려고 하는가를 물어보든가.
적고 보니 세부전공 고민하는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진로 고민하는 고등학생에게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 saltpeanuts 2012.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