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사회의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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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학원에 와서 가장 골치아팠던 것은, 다른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였다. 대학원생은 연구자가 되기 위해 다니고 있는 것이고, 보통 말하는 학생과는 다르다. 대학원생의 공부는 직업이고, 아직 어설플지언정 지식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오히려 인턴과도 같다. 대학원의 코스웍은 돈내고 다니는 인턴쉽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대학원생은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이 본업이고, 사람들과도 주로 공부를 주제로 얘기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들어와보면 그렇지 않다. 같은 세부전공을 하는 사람들끼리도 공부하는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과는 무슨 얘기를 하면 좋단 말인가...? 이에 대한 가장 안전한 해법은, 이곳이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직장인에게 기대되는 정도의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동료와 적절히 잡담을 할 수 있고, 일이 걸리면 일 얘기를 할 수 있다. 적당히 주위에 대해 소문을 주고받을 수도 있고, 자리에 없는 동료의 뒷담화를 할 수도 있다. 물론 내가 뒷담화의 대상이 될 수도 있으므로 사적인 정보는 감춰두어야 한다. (사람들은 뒷담화거리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므로, 억측이 번지지 않도록 적절히 대외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유용하다) 내 일(=연구)에 대해 정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수 있지만 되도록이면 물어보지 않는 것이 좋다. 상대는 어차피 나와 같은 업무(=주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므로 물어봐도 잘 모를 경우가 많으니, 물어봐서 당황스럽게 하거나 저쪽의 일(=연구)를 방해하는 것은 안전한 처신이 아니다. 다른 동료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지 말 것이며, 혹시 그런 것이 화제에 오르더라도 적당히 피한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되도록 끼어들지 않는 것이 좋다. 설령 자신이 그에 대한 해법을 가지고 있더라도 끼어들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교수를 대하는 법은 더 어렵다. 교수는 초/중/고등학교의 선생님이 아니므로 그가 수업 및 그에 연관된 내용에 대해 다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학부 때만 해도 교수님은 확립된 지식을 정리해서 전달하는 분으로 보일 수 있지만, 대학원에 들어오면 교수가 전달하는 지식의 수준은 '선배가 가르쳐주는' 수준으로 떨어진다. 대학원에서 접하는 지식은, 모두가 현재 시행착오를 통해 밝히는 과정에 있는 가설 수준의 지식이기 때문이다. 레전드급 괴수 레벨에 달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저널에 매년 논문을 실어대는 교수의 의견이라 할지라도, 그 의견이 학계 전체의 지지를 받는 수준이 아니면 아직 가설이다. 따라서 원리적으로는 대학원생과 교수 사이의 토론이 성립할 수 있다. 교수와 대학원생의 의견이 대립하면, 원리적으로는 대학원생이 틀린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이론적 전제와 자료의 해석이 다른 것일 뿐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하나의 학문적 주장은 뒤에서 다른 수많은 별개 주장과 연결되어 있으며, 독립적으로 놓고 보면 이상해보이는 주장이 다른 주장들과 연결되면 전체적인 그림 안에서 아름답게 보이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대학원생은 교수와 달리 이 전체 그림을 볼 만큼 지식과 분석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따라서 교수가 일방적으로 대학원생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이 여전히 대학원에서 벌어지며, 대학원생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리하여 초/중/고등학교 선생님 대하듯 교수를 대하게 되기 쉬운데, 대학원생은 그러면 안 된다. 그는 언젠가 스스로 지식을 만들어내어 교수와 같은 입장, 즉 연구자가 되어야 할 몸이므로, 교수에게 자신이 연구해 나갈 방향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 (원리적으로는, 교수든 아니든, 나이가 많든 적든, 모든 박사학위소유자는 모두 연구자로서 동등하다.) see also [http]박사과정 학생이 유의해야 하는 점

즉, 대학원생은 교수를 존경해야 하지만 교수의 주장을 모두 믿어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교수 자체는 그림자도 밟을 수 없는 스승처럼 모시되, 그분의 학문적 주장에 대해서는 선배님, 혹은 대선배님을 대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실제로 선배님을 대하듯 토론하려 들었다간 싸가지없다고 찍힐 확률이 90%를 넘는다. 물론 교수는 절대로 자신이 그런다고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리고 수업시간이든 면담시간이든 교수와 토론해서는 안 된다. 대학원생이 교수를 대하여 할 수 있는 학문적 의사소통이란, 감사히 평가와 조언과 충고를 받는 것이 전부이다. 극단적으로는, 조언이 무의미해보일지라도 그 자리에서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교수도 사람이니까.

그리하여 대학원생의 생활은 고독하고 고독한 것이며, 그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터놓고 자신의 가설을 이야기하고 토론하며 지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 그러므로, 연구자는 자기와 동일한/상호수용가능한 이론적 전제와 흥미 범위를 가진 다른 연구자를 이 세상 어딘가에서 만날 때까지는 어느 단계 어느 곳에 있더라도 혼자이다. 그러므로 대학원생은 자신의 동료를 대학원에서 찾을 생각을 하지 말고, 과거와 현재를 가리지 말고 논문을 폭넓게 읽으면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를 찾아야 한다. 대학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학원생의 연구 동료가 될 확률이 너무 낮다.

.....이게 내가 다니는 대학원만의 특수한 사정이었으면 좋겠다.

--2011.12.22 saltpeanu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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