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관계는 대략 이렇게 여섯가지 정도로 해석될 수 있고 실제로는 몇 가지 타입을 결합해서 해석하게 된다. 주의할 점은, 여기서 사제관계가 우월하고 장인-도제관계가 열등하다는 평가가 나와서는 안 된다. 현대의 학문은 진리를 추구하는 분야도 있지만 지식을 생산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하는 분야도 많다. 지식 생산은 장인의 일이고, 장인은 의사나 법률가가 그 전문적인 능력으로 인해 존중받고 대접받는 것처럼 전문직업인으로써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또한 애초에 동양에는 장인-도제관계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위에 적은 사제관계는 서양의 전통 안에서 발전했다고 본다. 동양에 저런 관계가 있었다면 수도하는 선승들 사이에서나 가능했으리라.
문제는, 현실이 이렇게 딱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가르치는 사람의 해석과 배우는 사람의 해석이 다른 경우가 많고, 둘째로 양 당사자 모두 일관적이지 않아 어떤 때에는 저렇게 해석하고 어떤 때에는 이렇게 해석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가장 비극적인 경우는 양 당사자간 갈등이 벌어질 때마다 매번 관계를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여 그에 따른 해결을 주장하는 경우이다. 사람은 일관적이지 않다.
구체적인 사례로 대학원의 지도교수와 지도학생의 예를 들어보자. (애초에 이 모든 고민은 이 관계를 어떻게 인식할 것이며 양 당사자가 상대에게 어떤 반응을 기대할 수 있는가에 대한 saltpeanuts의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아, 인생.) 우선 이 관계를 해석하는 데 있어 생겨나는 어려움은 다음의 네 가지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온다.
- 논문지도라는 관계에 대한 교수의 해석
- 논문지도를 하는 교수의 방식
- 논문지도라는 관계에 대한 학생의 해석
- 논문지도를 받는 방식에 대한 학생의 기대
예를 들어, 교수는 논문지도관계를 장인-도제관계로 해석하는데 학생은 계약관계로 생각한다고 하자. 교수는 학생이 게으르고 의욕이 없고 주도적으로 학습하지 않아 학자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며, 학생은 교수가 책임을 다하지 않고 게으르며 무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교수가 계약관계로 해석하는데 학생은 장인-도제관계로 해석한다고 하자. 교수는 학생이 독립적으로 연구할 생각은 안 하고 미성년자처럼 자기 앞가림을 교수가 해주기를 바란다고 생각할 것이며, 학생은 교수가 이미 자리잡은 자의 여유를 자랑하며 학생을 방치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예도 아직 단순하다. 1/2와 3/4가 세트로 움직이는 예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1, 2, 3, 4가 모두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교수가 논문지도관계를 사제관계로 해석하고 스스로를 스승으로 인식하지만 논문지도를 할 때는 장인처럼 행동하며, 그것이 비일관적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그렇게 행동하는 근거를 이 관계가 의무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제자가 될 수 없는 학생을 가르치게 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도 있다. 좀 더 비관적인 케이스로는 논문지도관계를 의무적 계약관계로 해석하여 지도의 책임은 기간이 다하면 끝나는 일회적인 것으로 인식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장인-도제제도로 해석하여 학생이 졸업한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을 수도 있다. 학생은 스스로를 제자로 인식하면서 실제로는 계약관계의 학습자처럼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인식과 행동이 각각 어떤 타입을 따르든 관계없이 졸업 후의 직업적 보장을 지도교수에게 기대하는 사례도 많다. 논문지도관계에서 양자의 관계에 대한 해석과 실제 행동은 사안마다 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불일치가 표면적으로는 사제관계로 위장되거나, 혹은 계약관계로 위장된다.
한국의 대학원은 겉모습이 어떻든간에 실질적으로는 장인-도제관계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공계의 사노비 현상은 주인-노예관계로 변질된 케이스이다. 그 정도로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대학원생과 교수 사이의 권력관계는 절대적이고, 이 힘은 교수가 대학원생의 졸업 여부를 판정할 수 있으며 이후 연구자로서 취직하는 데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데서 온다. 이 영향력은 인맥에서 오는 힘이기도 하지만 장인의 판단이 곧 업계 내부의 기준으로 작용하기 쉽다는 데서도 온다. 대학원생 혹은 박사초년생이 내놓은 연구의 가치는 지도교수의 평가에 강하게 좌우되고, 대학원생에게 지도교수의 평가에 반박할 방법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 점에서 이공계는 그나마 다행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방법론이 외부적 기준을 제공하니까.) 장인들끼리의 우열은 내부적 기준보다는 외부적 권위 (권위있는 학술지 게재)에 의해 결정되는 일이 많다. 장인의 후원자 혹은 고객이 누구냐에 따라 업계 내에서 장인의 위치가 움직이는 것과 비슷하다. 같은 업계 종사자로서 동료 장인을 굳이 적으로 돌릴 이유가 없으므로 (잘못하면 둘 중 하나가 낙오될 때까지 싸워야 한다. 위험하다) 상호 비판도 잘 행해지지 않으며, 도제(였던 자)는 장인의 논문을 비판하거나 반박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친분있는 관계에서, 따로, 사담으로 하는 것이 예의에 걸맞다. 공공연하게 비판하면 장인의 위신에 흠이 갈 수도 있고, 그걸 이유로 배신자 취급을 당할 수도 있다. 장인의 위신은 장인이 키운 모든 도제들에게도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장인의 포지션에 선 지도교수의 지도는 절대적으로 지도교수의 마음에 달려 있다. 이유야 어쨌건 마음에 들면 좀 더 신경써서 봐 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방치해도 된다. 어차피 한국의 대학원에서 지도교수란 행정적으로는 Thesis advisor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도를 해야 할 의무가 없다. 장인으로 행동할 자유를 제도가 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학원생은 속한 조직에서의 의무 때문에 지도교수의 지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대안이 없으며, 따라서 원하지 않아도 도제로서 지도교수의 기분을 맞추고 마음에 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지도교수의 눈에 들면 이번에는 관계가 정진정명 장인-도제관계가 되거나 혹은 사제관계로 발전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대학원생은 그것을 희망으로 버티거나, 혹은 지금까지 한 것을 내던지고 공부를 그만두거나, 혹은 한국을 떠나는 것 중에서 고를 수밖에 없다.
-- saltpeanuts 2012. 1. 14